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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울산] 울산암각화박물관, 7천 년 전 신석기 사람들이 바위에 새긴 고래잡이 이야기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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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울산] 울산암각화박물관, 7천 년 전 신석기 사람들이 바위에 새긴 고래잡이 이야기

파티샤 2026. 10. 21. 19:40

▪ 일정 : 2026년 10월 11일 (일)

▪ 위치 : 울산광역시 울주군 두동면 반구대안길 254 (울산암각화박물관)

▪ 관람 : 상설전시 + 해설사 해설 (약 50분)

 


 

울산 2박 3일 여행의 마지막 코스는 울산암각화박물관이었다.

 

작년(2025년) 7월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오른 「반구천의 암각화」를 소개하는 곳이다.

 

사실 이날은 평산책방, 통도사를 거쳐 오느라 집사람과 나는 둘 다 지쳐 있었다.

 

박물관에 들어갔더니 마침 해설사 선생님이 한 가족 일행에게 해설을 하고 계셨다.

같이 들어도 되냐고 여쭈었더니 흔쾌히 그러라고 하셨다.

 

선생님은 고래 그림 하나하나에 이 지역의 역사와 사람들의 이야기를 엮어 설명해 주셨다.
그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니 울산이 새롭게 보이기 시작했다.


나에게 울산은 그동안 자동차와 조선소가 있는 공업 도시였다.

그런데 울산은 7천 년 전부터 고래를 쫓던 사람들이 살아온, 바다의 도시였던 것이다.

 

우리 역사를 대하는 선생님의 태도도 오래 마음에 남게 되었다.

그날 들었던 이야기를 공식 안내 자료와 전문 자료를 보충해서 정리해 보았다.

 


 

박물관이냐, 실제 암각화냐

 

▼ 울산암각화박물관 안내판

 

주차하고 안내도를 보니,

박물관에서 20분쯤 걸으면 실제 반구대 암각화를 강 건너 전망대에서 볼 수 있게 되어 있었다.

 

 

▼ 울산암각화박물관 주변 안내도 (파일을 열면 크게 볼 수 있다)

IMG_1946.JPEG
1.73MB

 

하지만 이틀 연속 걷기도 하고 산도 오르고 하면서 온몸이 지쳐 있었던 터라,

그리고 광주까지 운전해서 돌아가야 했기에...

집사람과 상의해서 이번에는 박물관만 보기로 했다.

실제 암각화는 다음을 기약하기로 했다.

 

▼ 박물관 외관

 

▼ 박물관 내부 로비

 


 

반구대 암각화는 어떤 곳일까

 

울산 울주군의 대곡천(반구천) 절벽에는 바위를 쪼아 새긴 그림이 모여 있다.

국보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다.

'암각화'는 바위에 새긴 그림이라는 뜻이다.

 

▼ 세계유산 「반구천의 암각화」와 탁월한 보편적 가치 안내

 

  • 발견 : 1971년 12월 25일. 근처 천전리 암각화를 조사하던 연구팀이 마을 주민의 제보로 찾아냈다. 크리스마스에 발견되어 "크리스마스의 선물"이라고도 불린다
  • 국보 지정 : 1995년
  • 규모 : 너비 약 8m, 높이 약 4.5m의 중심 바위면과 주변 바위 10곳
  • 그림 수 : 공식 리플렛 기준 312점. 처음 조사했을 때는 200점이 안 되었는데, 조사 기술이 좋아지면서 계속 늘었다
  • 세계유산 : 2025년 7월, 천전리 암각화와 함께 '반구천의 암각화'라는 이름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올랐다. 우리나라 17번째 세계유산이다

 

바위면은 북쪽을 향하고, 윗부분이 처마처럼 앞으로 튀어나와 있다.

 

그 덕분에 비바람을 어느 정도 피하며 오랜 세월을 견뎠다.

 

그림에는 고래, 거북, 상어 같은 바다 동물과 호랑이, 사슴, 멧돼지 같은 육지 동물 등 20여 종의 동물이 나온다.

 

사람의 모습, 그리고 배, 작살, 그물, 활 같은 사냥 도구도 새겨져 있다.

 

▼ 박물관에 실물 크기로 재현한 반구대 암각화

 

실제 암각화는 강 건너 전망대에서 망원경으로 봐야 해서 잘 보이지 않을 때가 많다고 한다.

 

박물관에서는 이렇게 코앞에서 볼 수 있다.

 


 

'반구천의 암각화'는 두 곳을 묶은 이름

 

세계유산 이름인 '반구천의 암각화'는 반구천을 따라 약 3km 거리에 있는 두 유적을 함께 부르는 이름이다.

  •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 : 남쪽(하류), 그림 312점. 고래, 거북, 호랑이, 사슴 등 동물과 고래잡이·사냥 장면
  • 천전리 명문과 암각화 : 북쪽(상류), 그림 625점. 신석기 시대 사슴 그림, 청동기 시대 동심원·마름모 무늬, 신라 시대 행렬·배·용 그림과 글자

▼ 천전리 암각화 재현, 동심원과 마름모 무늬

 

 

▼ 천전리 암각화 재현, 바위면 아래쪽을 가까이서

 

 

천전리는 한 바위면에 시대별 그림이 구역을 나눠 새겨져 있어서,

수천 년에 걸친 변화를 한눈에 볼 수 있다.

 

해설사 선생님은 두 바위의 그림이 서로 다르게 생긴 이유도 설명해 주셨다.

 

신석기 시대 사람들은 고래나 사슴, 사람처럼 눈에 보이는 것을 있는 그대로 새기려 했다.

 

반면 청동기 시대 사람들은 동심원이나 마름모처럼 머릿속의 생각이나 믿음을 문양으로 표현하려 했다는 설이 있다.

 

반구대의 고래가 사실적인 반면 천전리에는 알 수 없는 무늬가 가득한 것도 그래서다.

 

이 글은 고래 그림이 있는 반구대 암각화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이어 가 보겠다.

 


 

반구대 암각화는 언제 새겼을까

 

해설사 선생님은 반구대 암각화를 약 7,000년 전 신석기 시대 사람들이 새겼다고 설명해 주셨다.

 

세계유산 공식 리플렛은 반구천의 암각화 전체를 약 7,000년 전 신석기 시대부터 9세기 신라 시대까지 여러 세대에 걸쳐 새긴 유산으로 소개한다.

그중 신석기 시대를 대표하는 것이 반구대의 고래 그림이고, 9세기 신라 시대의 것은 천전리에 남은 글자와 그림이다.

반구대의 고래 그림을 신석기 시대 것으로 보는 근거는 이렇다.

  • 작살이 박힌 고래 뼈 : 2010년 울산 황성동의 신석기 시대 조개더미(패총)에서 뼈로 만든 작살 촉이 그대로 박힌 고래 뼈가 나왔다. 이 지역에서 적어도 7,000년 전부터 고래를 사냥했다는 직접 증거다
  • 비슷한 유물 : 암각화 속 사슴, 그물, 배 같은 주제와 닮은 유물이 부산 동삼동 등 남해안의 신석기 유적에서 나온다
  • 없는 것도 근거 : 청동기 시대 암각화에 흔히 나오는 칼, 동심원 같은 무늬가 반구대에는 보이지 않는다

다만 학계의 의견이 완전히 하나로 모인 것은 아니다.

 

오랫동안 교과서에서는 청동기 시대 유적으로 가르쳤고,

지금도 신석기 말에서 청동기 초까지로 보는 연구자들이 있다.

 

그래서 자료에 따라 "약 6,000년 전"이라고 적은 곳도 있다고 한다.

 

최근에는 신석기 시대로 보는 견해에 무게가 실리는 흐름이다.

 

반구대 암각화는 한 번에 새긴 그림도 아니다.

 

돌로 쪼고, 갈고, 긋는 방식으로 새겼는데,

그림이 겹친 부분을 살펴보면 어느 것을 먼저 새겼는지 알 수 있다.

 

오래된 그림일수록 고래 같은 바다 동물이 많고,

나중으로 갈수록 호랑이, 표범 같은 육지 동물이 늘어난다.

 

긴 세월 동안 여러 세대가 같은 바위에 그림을 덧새긴 셈이다.

 


 

세계유산으로 인정받은 이유

 

유네스코는 두 가지 가치를 인정했다고 한다.

  • 인류의 창의성이 담긴 걸작 : 날카로운 관찰력으로 사실적으로 새긴 그림과 독특한 구도가 뛰어나며, 특히 고래와 고래잡이 그림의 예술성이 돋보인다
  • 사라진 문화의 특별한 증거 : 반구천이라는 한 장소에서 수천 년 동안 바위에 그림을 새기는 전통이 이어졌음을 보여 준다

▼ 세계유산에 오른 세계의 바위그림들, 그 사이에 반구천의 암각화

 

▼ 세계유산 바위그림 목록, 맨 마지막이 반구천의 암각화

 

▼ 함께 전시된 러시아 「오네가 호수와 백해의 암각화」

 

이 암각화는

러시아 카렐리야 공화국에 있는 암각화로, 2021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올랐다.
바위에 새긴 그림이 약 4,500점이나 되고, 약 6,000~7,000년 전 북유럽 신석기 시대 사람들이 남긴 것이다.

 

같은 시기, 지구 반대편 북쪽 바닷가 사람들도 바위에 사냥과 배를 새기고 있었다.
그림 수로는 오네가 호수와 백해가 훨씬 많다.

하지만 고래를 쫓고, 작살을 꽂고, 배로 끌고 오는 고래잡이의 전 과정을 이렇게 생생하게 담은 바위그림은 세계에서도 찾아보기 어렵다고 한다.

유네스코가 반구천의 암각화를 세계유산으로 올리며 특히 고래와 고래잡이 그림을 꼽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36곳의 세계 바위그림 가운데, 고래 이야기만큼은 우리 반구대가 단연 최고라고 자부할 수 있을 것 같다.

 


 

왜 하필 이곳이었을까

 

해설사 선생님이 특히 강조하신 부분이다.

 

반구대는 암각화가 알려지기 훨씬 전부터 선비들이 찾던 아름다운 곳이었다.

고려 말 정몽주가 다녀갔다고 해서 '포은대'라 부르기도 했고, 조선의 대표 화가 겸재 정선이 이곳을 「반구」라는 그림으로 남겼다.

 

▼ 반구천 주변의 문화유산 전시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다.

 

지금의 반구대는 울산 바다에서 한참 떨어진 산골짜기다.

바다에서 고래를 잡던 사람들이 왜 이 깊은 계곡까지 와서 고래를 새겼을까?

 

우선 그때는 바다가 지금보다 가까웠을 가능성이 크다.

7천 년 전쯤은 빙하기가 끝나고 해수면이 지금보다 높았던 시기라,

태화강 하구의 옛 울산만에 바닷물이 훨씬 안쪽까지 들어와 있었다고 본다.

정확히 얼마나 가까웠는지는 알기 어렵지만, 지금 지도로 느끼는 거리보다는 가까웠을 것이다.

그래도 이곳은 바닷가가 아니라 강을 거슬러 올라간 계곡 안쪽이다.

고래를 잡던 해안이 아니라 일부러 이곳을 찾아와 그림을 새겼다는 뜻이다.

 

해설사 선생님은 지금 우리 눈에 아름다운 이 계곡이 7천 년 전 사람들에게도 아름다웠을 것이고,

그래서 특별하고 신성한 곳으로 여기지 않았을까 하셨다.

 


 

말이 울리는 바위

 

해설 중에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소리에 관한 이야기다.

 

암각화가 새겨진 바위는 윗부분이 사람 이마처럼 앞으로 튀어나와 있다.

그래서 그 아래에서 말을 하면 소리가 공명해서 크게 울린다고 한다.

 

선생님은 아마 이곳에서 제사장 같은 종교 지도자가 의식을 치르지 않았을까 하셨다.

그냥 상상으로만 들리지 않는 이유가 있다.

 

세계 고고학계에는 옛 장소의 소리를 연구하는 '고고음향학'이라는 분야가 있다고 한다.

2017년 스페인의 한 연구팀은 반구대와 비슷한 시기(약 6,500~5,000년 전)의 프랑스와 이탈리아 바위그림 유적을 조사했다.

바위 그늘마다 풍선을 터뜨려 메아리를 측정해 보니, 그림이 그려진 곳이 그렇지 않은 곳보다 소리를 더 잘 되울렸다.

메아리가 가장 강한 곳에 그림도 가장 많았다.

핀란드의 바위그림 절벽이나 프랑스의 동굴 벽화에서도 비슷한 경향이 보고되었다.

옛사람들이 소리가 특별하게 울리는 곳을 골라 그림을 남겼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반구대에도 이런 생각을 뒷받침하는 단서들이 있다.

  • 의식을 치르는 사람 : 바위에는 팔다리를 크게 벌린 사람, 긴 막대를 입에 대고 부는 사람이 새겨져 있다. 노래하거나 악기를 불며 의식을 치르는 모습으로 해석된다
  • 해 질 녘에만 드는 빛 : 바위가 북쪽을 향하고 있어서 해가 질 무렵에만 잠깐 빛이 든다. 어둑하던 바위에 석양이 비쳐 그림이 떠오르고, 그 앞에서 노랫소리가 크게 울려 퍼졌다고 상상해 보자
  • 영혼을 안내하는 동물 : 고래 무리 앞에 거북 세 마리가 앞장서 헤엄치는 그림이 있고, 고래 곁에는 새가 있다. 바다와 육지, 하늘을 오가는 거북과 새를 고래의 영혼을 저세상으로 이끄는 안내자로 보는 해석도 있다
  • 수천 년 동안 같은 바위 : 여러 세대가 같은 바위로 돌아와 그림을 덧새겼다. 바로 위 천전리 바위에도 신석기부터 신라 시대까지 그림과 글자가 이어진다

다만 반구대의 소리 울림을 과학적으로 측정한 연구는 아직 찾지 못했다.

유럽의 연구도 소리가 잘 울리는 곳에 그림이 많다는 것을 보여 줄 뿐, 그 때문에 그렸다고 증명한 것은 아니다.

 

그래도 해설을 듣고 나니 쉽게 흘려들을 이야기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해설사 선생님 말씀으로는,

박물관 교육 프로그램 「반구천을 누비다」에 참여하면 바위 아래까지 내려가서 이 소리를 직접 들어 볼 수 있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니 더 궁금해졌다. (이 아쉬운 이야기는 글 끝에서 다시 하겠다.)

7천 년 전 사람들이 이 계곡에서 느낀 아름다움과 경외감은, 수천 년 뒤 정몽주와 정선이 이곳을 찾아와 느낀 감동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바위에 새긴 고래는 어떤 종일까

 

반구대 암각화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동물이 고래다.

 

50점이 넘는 고래 그림이 주로 바위 왼쪽에 모여 있고,

크기는 대부분 20~30cm, 큰 것은 80cm쯤 된다고 한다.

 

▼ 암각화 도면

고래(파란색)와 육지 동물(초록·노란색)을 색으로 구분해 보여 준다

 

▼ 고래 무리만 크게 확대해 보면, 머리를 위로 하고 헤엄치는 고래들 사이로 배를 드러낸 줄무늬 고래(오른쪽 아래)가 보인다

 

▼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 전체 도면

 

고래들은 대부분 하늘에서 내려다본 모습으로, 머리를 위로 하고 무리 지어 헤엄친다.

옆모습으로 새긴 고래는 꼬리만 살짝 비틀어 위에서 본 것처럼 그렸다.

물고기는 꼬리가 세로로 서 있지만 고래는 꼬리가 가로로 누워 있는데, 이 차이를 보여 주려고 일부러 그렇게 새긴 것으로 본다.

이렇게 생김새와 습성을 꼼꼼하게 새겨 둔 덕분에, 오늘날 전문가들은 그림만 보고도 고래의 종류를 가려낸다.

 

▼ 반구대 암각화 속 고래, 이렇게 알아본다 (이해를 돕기 위해 직접 만든 그림)

 

해설에서는 세 종류 정도가 구별된다고 들었다.

 

찾아보니 공식 안내문과 백과사전, 언론 보도가 모두 꼽는 고래가 바로 이 세 종이다.

  • 북방긴수염고래 : 머리 위에 두 갈래로 갈라진 모양이 새겨져 있고, 등지느러미가 없다. 실제 북방긴수염고래는 숨을 내쉴 때 물줄기가 V자로 갈라져 솟는다. 공식 안내문은 무리 지어 물을 뿜는 모습으로 소개한다
  • 혹등고래 : 배를 하늘로 향해 뒤집은 채 배의 주름을 길게 강조했다. 실제로 혹등고래는 배를 드러내고 눕거나 물 위로 힘차게 뛰어오르는 행동을 한다
  • 귀신고래 : 목 부분에 줄 다섯 개가 새겨져 있다. 새끼를 등에 업은 어미 고래 그림도 귀신고래로 보는 경우가 많다. 다만 이 그림을 고래 몸에 붙어 사는 물고기로 보는 의견도 있다

 

재미있는 점은 이 세 종이 모두 수염고래라는 것이다.

수염고래는 숨구멍이 두 개다.

 

해설사 선생님이 들려주신 숨구멍 이야기가 바로 이 고래들과 이어진다.

이 밖에 공식 안내문은 향유고래를 더해 네 종을, 백과사전은 참고래까지 더해 다섯 종을 꼽는다.

 

향유고래는 머리가 크고 네모나서 그림에서도 알아보기 쉽다.

 

박물관 현장 해설에서는 범고래, 들쇠고래, 상괭이까지 더해 "최소 7종"이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자료마다 숫자가 다른 것은 그림을 얼마나 넓게 해석하느냐의 차이다.

 

공식 자료는 생김새로 확실히 구별되는 큰 고래만 꼽는다.

그림 속 고래가 상상 속 동물은 아니다.

부산 동삼동의 신석기 시대 조개더미에서는 고래 뼈가 2천 점 넘게 나왔는데, 귀뼈를 오늘날의 고래 표본과 비교해 보니 혹등고래와 대왕고래의 뼈였다.

 

그 시대 사람들이 실제로 보고 사냥하던 고래였다는 이야기다.

 


 

이빨고래와 수염고래, 숨구멍으로 구별하기

 

고래는 크게 두 무리로 나뉜다.

 

먹이를 먹는 방법이 다르고,

숨구멍 수도 다르다.

  • 이빨고래 : 이빨로 물고기, 오징어를 하나씩 잡아먹는다. 숨구멍 1개. 향유고래, 범고래, 돌고래
  • 수염고래 : 이빨 대신 빗처럼 생긴 고래수염으로 작은 새우나 물고기 떼를 바닷물째 들이마신 뒤 걸러 먹는다. 숨구멍 2개. 북방긴수염고래, 혹등고래, 귀신고래, 대왕고래

 

▼ 이빨고래와 수염고래, 숨구멍으로 구별하기 (이해를 돕기 위해 직접 만든 그림)

 

고래는 물고기가 아니라 우리처럼 허파로 숨을 쉬는 포유류다.

 

그래서 물 위로 올라와 머리 꼭대기의 숨구멍으로 숨을 내쉬는데, 이때 물보라가 솟아오른다.

 

이빨이나 고래수염은 입 안을 들여다봐야 알 수 있지만, 숨구멍은 바다 위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숨구멍이 두 개인 수염고래는 물줄기가 V자로 갈라져 보이기도 한다.

 

해설사 선생님은 반구대 암각화에 수염고래의 두 숨구멍을 표현한 그림이 있다고 하셨다.

 

북방긴수염고래 머리 위의 "두 갈래로 갈라진 모양"과, 공식 안내문의 "무리 지어 물을 뿜는 북방긴수염고래"라는 설명을 함께 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두 갈래로 뿜어 나오는 숨을 바위에 새긴 것이다.

7천 년 전 사람들이 고래를 얼마나 가까이서, 얼마나 오래 지켜봤는지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바위에 새긴 고래잡이 과정

 

반구대 암각화가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가장 큰 이유는 고래를 잡는 여러 장면이 한 바위에 함께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노르웨이 알타의 암각화에도 선사시대 고래 사냥 그림이 있지만, 반구대처럼 사냥의 여러 단계가 담겨 있지는 않다고 한다.

 

다만 바위에 만화처럼 순서대로 그려진 것은 아니다.

여러 그림이 흩어져 있고, 이를 전문가들이 사냥의 흐름으로 이어서 읽은 것이다.

 

▼ 바위에 새긴 고래잡이 과정 (이해를 돕기 위해 직접 만든 그림)

 

 

  • ① 배를 타고 쫓는다 : 배 그림은 네 곳쯤에서 보인다. 뱃머리와 꼬리가 반달처럼 휘었고, 사람은 짧은 세로줄로 표현했다. 5명, 7명, 17명 정도가 탄 배가 있고 20명 가까이 탄 배도 있다. 여러 명이 한 배에 탄 것으로 보아 고래잡이는 마을이 함께하는 큰일이었다
  • ② 작살을 꽂는다 : 등에 작살이 박힌 고래가 있다. 울산 황성동 유적에서 뼈 작살 촉이 박힌 채 발견된 신석기 시대 고래 뼈가 이 장면이 실제였음을 뒷받침한다
  • ③ 부구를 매단다 : 작살과 이어진 줄에 둥근 부구(물에 뜨는 도구)가 매달려 있다. 고래가 깊이 잠수하지 못하게 붙잡아 두고 위치를 알려 주는 역할을 했을 것으로 본다. 가죽 주머니에 공기를 넣어 만들었을 것으로 추정하지만, 정확한 재료는 알 수 없다
  • ④ 배로 끌고 온다 : 사냥한 고래를 배에 묶어 끌고 가는 장면이 있다고 소개된다. 해설에서 들은 "고래를 끌어 올리는" 장면이 이 부분에 해당한다
  • ⑤ 해체하고 나눈다 : 배를 하늘로 향하고 뒤집혀 있는 큰 고래의 몸통에 줄무늬가 여러 개 새겨져 있다. 이 줄을 고래를 부위별로 자르는 선으로 보고, 마을 사람들이 함께 나누었을 것으로 해석한다. 다만 같은 그림을 배를 드러내고 눕는 혹등고래의 배 주름으로 보는 의견도 있다

 

배, 작살, 부구는 바위에서 직접 확인되는 그림이고, 해체와 분배는 그림을 바탕으로 한 해석이다.

 

그물로 고래를 잡는 장면이 있다는 설명도 있지만, 같은 그림을 울타리나 물고기를 가두는 장치로 보는 의견도 있어 해석이 엇갈린다.

 

한때 인류가 바다에서 고래를 사냥하기 시작한 것은 1,000년 전쯤으로 여겨졌다.

반구대 암각화는 그 시작을 수천 년 앞당겼고, 그래서 인류 최초의 고래잡이 기록으로 평가받는다.

 

물론 사냥보다 해안으로 떠밀려 온 고래를 활용한 모습으로 봐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같은 그림도 보는 눈에 따라 다르게 읽힐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원시인이라는 오해

 

우리는 신석기 시대 사람들을 흔히 '원시인'이라고 부른다.

 

그 말에는 은근히 미개하고 무지한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깔려 있다.

동굴에서 짐승 가죽을 걸치고 막대기를 휘두르는 모습을 떠올리기 쉽다.

 

그런데 반구대 암각화 앞에 서면 그 생각이 무너진다.

 

이 사람들은 고래가 언제, 어떻게 숨을 쉬는지 알 만큼 바다를 오래 관찰했다.

고래의 종류를 구별해 바위에 새겨 둘 만큼 눈이 밝았다.

여러 사람이 탈 수 있는 배를 만들었고, 작살과 줄과 부구를 이어 쓰는 사냥법을 고안했다.

십여 명이 한 배에 올라 손발을 맞춰야 하는 일이니, 서로 믿고 역할을 나누는 공동체도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잡은 고래는 혼자 차지하지 않고 이웃과 나눴다.

 

살펴보면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자연을 이해하려 애쓰고, 도구를 만들어 쓰고, 함께 일하고, 얻은 것을 나누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자신들의 이야기를 오래 남기고 싶어 했다.
7천 년 전 사람들이 바위에 새긴 그 마음이, 지금 내가 블로그에 여행기를 남기는 마음과 얼마나 다를까.

생각해 보면 우리나라는 유난히 기록을 소중히 여겨 온 나라다.
왕의 하루하루를 빠짐없이 적은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 직지까지.
어쩌면 무엇이든 남기고 기록하려는 우리의 습관은,

7천 년 전 이 바위 앞에서부터 이어져 온 것인지도 모르겠다.

 


 

'문화재'에서 '문화유산'으로

 

해설사 선생님의 말씀 중 가장 오래 마음에 남은 것은 이름에 관한 이야기였다.

 

우리는 오랫동안 '문화재(文化財)'라는 말을 써 왔다.

 

여기서 '재(財)'는 재물, 재산을 뜻하는 글자다.

조상에게서 물려받은 문화를 값을 매기고 사고팔 수 있는 물건처럼 여기는 느낌이 담겨 있었다.

실제로 이 말이 재화의 성격이 강하다는 지적이 오래전부터 있었고, '문화재'라는 표현을 쓰는 나라도 한국과 일본 정도라고 한다.

 

그래서 2024년 5월 17일부터 '문화재'라는 이름은 '국가유산'으로 바뀌었다.

 

그 아래를 문화유산, 자연유산, 무형유산으로 나누고, 문화재청도 국가유산청이 되었다.

1962년 문화재보호법이 생긴 뒤 62년 만의 변화다.

 

'유산(遺産)'은 앞선 세대가 남겨 준 것을 뜻한다.

 

내 것이니 마음대로 써도 되는 재산이 아니라, 잘 지켜서 다음 세대에 물려줘야 하는 것이다.

이름이 바뀌었으니 생각도 함께 바뀌어야 한다.

 

반구대 암각화는 우리가 가진 보물이 아니라, 7천 년 전 사람들에게서 잠시 맡아 두었다가 우리 아이들과 그 아이들에게 고스란히 넘겨줘야 할 이야기다.

 


 

울산에 간다면 울산암각화박물관부터 들러 보길 권한다.

 

실물 크기로 재현한 암각화를 코앞에서 볼 수 있다.

 

시간이 맞으면 꼭 해설을 들어 보자.

같은 바위가 전혀 다르게 보이고, 7천 년 전 이웃들의 목소리가 조금은 들리는 것 같다.

 


 

놓쳐서 너무 아쉬웠던 「반구천을 누비다」

 

원래 실제 반구대 암각화는 강 건너 전망대에서 망원경으로 멀리 바라봐야 한다.

 

그런데 박물관 교육 프로그램인 「반구천을 누비다」에 참여하면,

해설사 선생님과 함께 천까지 내려가서 암각화를 아주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거기서 바위 아래 소리가 울리는 것도 직접 들어 볼 수 있다고 해설사 선생님이 설명해 주셨다.

 

마침 일요일이라 15시 회차가 있었고,

선생님도 참석해 보라고 권해 주셨다.

시계를 보니 딱 시간이 맞았다.

하지만 우리는 광주에서 와서 오늘 내려가야 한다고 말씀드릴 수밖에 없었고, 결국 참석하지 못했다.

 

7천 년 전 바위를 가까이서 볼 수 있었는데, 그리고 바위 앞에서 그 소리를 직접 들어 볼 수 있었는데…

 

돌아오는 내내 너무 아쉬웠다.

 

다음에는 꼭 시간을 넉넉히 잡고, 체력도 남겨 두고 와서 「반구천을 누비다」에 참여하고 싶다.

천 아래로 내려가 진짜 바위를 코앞에서 마주하고, 그 바위 아래에서 소리가 어떻게 울리는지 직접 들어 보고 싶다.

 


 

관람 정리

  • 울산암각화박물관 : 울산광역시 울주군 두동면 반구대안길 254
  • 실제 반구대 암각화 : 박물관에서 걸어서 약 20분, 강 건너 전망대에서 관람 (망원경 비치)
  • 해설 : 시간이 맞으면 해설사 해설 추천. 우리는 다른 가족 일행의 해설에 함께 참여했다
  • 교육 프로그램 「반구천을 누비다」 (무료) : 박물관에서 출발해 해설사와 함께 반구대 암각화, 집청정, 반구서원, 공룡발자국 등 반구천 일원을 걸어서 탐방. 천 아래까지 내려가 암각화를 가까이서 보고 바위 아래 소리 울림도 들어 볼 수 있다
    • 운영 : 상반기 2~6월, 하반기 9~11월
    • 출발 : 화~금 15:00 / 토·일 10:30, 15:00 (약 70분)
    • 대상 : 초등학생 이상 (회당 20명 내외)
    • 예약 : 전화 052-229-4794 또는 박물관 안내데스크 현장 예약
    • 울산 여행 계획을 짤 때 이 시간에 맞춰 박물관 도착 시간을 잡자. 우리처럼 놓치면 두고두고 아쉽다
  • 실물 크기 재현 암각화, 천전리 암각화 재현, 암각화 도면 영상, 세계 바위그림 현황 전시
  • 기념품 가게 있음 (고래 마그넷 등)

참고한 자료

  • 세계유산 반구천의 암각화 공식 리플렛 (울산암각화박물관)
  • 국가유산청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 안내문 (2022·2024)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 (한국학중앙연구원)
  • 경향신문 「암각화에 새긴 '신석기시대 풍속화'」 (2022.12.5), 「반구천 암각화, 선사시대 '고래 사냥' 구체적 묘사 높은 가치」 (2025.7.13), 「7000년 전 '신석기 캔버스'의 눈물」 (2026.7.19)
  • 경북매일, 세계일보, 대학저널, 시대일보, 서울신문 관련 기사
  • Science News, "Sound-reflecting shelters inspired ancient rock artists" (2017)
  • 울산암각화박물관 교육행사 「반구천을 누비다」 안내 (https://www.ulsan.go.kr/s/bangudae/contents.ulsan?mId=001003005001000000)

오늘의 교훈 : 박물관에서는 해설사 선생님 옆에 서라. 같은 바위가 전혀 다르게 보인다